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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려야 하는 것
알아야 하는 것

알려야 하는 것, 알아야 하는 것

대북 정보유입 기록물 전시

세계인권선언 제19조

“모든 사람은 의견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에 관한 권리를 가진다.
이러한 권리는 간섭 없이 의견을 가질 자유와 국경에 관계없이
어떠한 매체를 통해서도 정보와 사상을 추구하고, 얻으며, 전달하는 자유를 포함한다.”

세계인권선언 제19조는 국경과 인종에 관계없이 세계의 모든 사람들이 표현의 자유를 가지며,
정보와 사상에 대한 알 권리와 이를 전달할 자유를 가지고 있다고 공표하고 있다.
그러나 이 선언이 닿지 못하는 곳이 있다. 북한이다.

북한은 표현의 자유가 심각하게 제한된 국가 중 하나로, 북한 주민들은 당국의 승인 없이는 다른 나라에서 생산된 인쇄물이나 시청각 자료를 소지하기만 하여도 정권에 의해 인권침해를 당할 수 있다.
당국이 만든 조그만 창문을 통해서만 세상을 볼 수 있는 북한 주민들에게, 그간 한국 시민사회와 국제사회가 다양한 매체를 통하여 정보를 보낸 것은, 이 ‘창문’ 너머의 세상을 알리기 위함이었다.
북한 사람들이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권리와 자유가 보장되는 삶에 대해 자각하여 그를 소망할 수 있도록.

이 전시는 남북 분단의 시기부터 지금까지 진행되고 있는 대북 유입정보 매체들과
이를 접한 북한 주민들의 목소리, 그리고 북한 주민들에게로 정보를 보내고 있는 이들의 활동에 대해 전한다.
이 전시를 통해 북한 주민들이 ‘모든 사람’의 권리와 자유를 향유할 수 있기를 소망하며
이어진 발자취들을 확인하고, 이 소망에 함께 연대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1950
1960
1970
1980
1990
2000
2000~
자료 출처 : DMZ박물관

한국전쟁 개전 3일 만인 6월 28일, 북한 인민군을 향해 미국 극동사령부가 제작한 1,200만 장의 삐라가 살포되었다. 이 시기 삐라 살포의 목적은 북한 주민들의 계몽 또는 북한 사회의 민주화 보다는 적의 사기를 꺾어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한 ‘심리전’에 있었다.
유엔군과 국군 그리고 북한군과 중공군이 한반도에서 서로를 향해 뿌린 삐라의 양은 최소 25억 장에서 최대 40억 장으로 추산된다.

1960~70년대 북한에 보내진 삐라들은 남북 간 체제 경쟁의 연장선에서 제작되었다. 이 시기 삐라들은 자유가 있는 한국 체제에 대한 강조와 더불어 월남한 인민군 가족의 풍족한 삶, 남한 경제의 발전 상 등을 보여주며 풍요로운 한국으로 월남하라는 내용의 삐라를 다수 북한에 보내었다.

특히 1970년대에는 김일성에서 김정일로 이어지는 2대 세습이 본격화하면서 김정일의 문란한 사생활 및 권력 세습에 대한 비난을 담은 삐라도 전달되었다.

1980년대에는 86 아시안 게임과 88 올림픽 개최를 알리며 발전된 한국의 상을 보여주는 동시에, ‘무료 초대권’의 형식의 삐라로 인민군의 귀순을 유도하였다.

더불어 당시 유명 여자 배우들의 사진과 더불어 “당신의 기다리겠어요”와 같은 문구로 자극적인 유혹을 하기도 하였다.

1990년대에는 북한 체제에 대한 비판과 더불어 자유를 강조하는 기조와 더불어 동구권과의 국교 정상화 등을 함께 알리며 국제사회에서의 사회주의 정권 퇴조를알리는 데 집중했다.

1993년, 북한 주민들을 대상으로 선교를 위한 전단 유입이 시작된다. 공산주의 국가를 대상으로 선교를 진행하던 ‘모퉁이돌선교회’는 1993년 풍선에 성경의 ‘마가복음’ 한 권을 통째로 인쇄하여 날려 보내는 방식으로 전단 선교를 시작하였다.

2000년대부터는 삐라 제작과 북으로의 유입을 진행하는 주체가 바뀐다. 2000년6.15 정상회담으로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상호비방 중단’에 합의하면서 남북 당국이 주도하던 삐라 살포는 공식 중단되었다. 이에 탈북자 단체들이 삐라 유입을 주도적으로 진행하였고 내용도 북한 체제에 대한 보다 노골적인 비판으로 바뀌었다. 더불어 대형 비닐 풍선을 동원해 삐라와 함께 라디오 또는 CD, USB, 지폐 등을 함께 보내기도 하였다.

2003년 10월에는 탈북민인 이민복씨가 ‘기독북한인연합’의 대표로서 북한으로 삐라를 보냈는데, 이는 탈북민이 북한에 삐라를 보낸 최초의 시도였다. 기독북한인연합은 삐라 살포를 ‘풍선사역(使役)’이라 부르며, ‘북한 주민들의 눈과 귀를 열어주고, 그들에게 종교를 가질 권리가 있다는 것을 알리는 수단”으로서 활용하였다. 2010년도 초반까지 북한으로 민간단체가 보낸 삐라의 수는 4억 5천장 정도로 추산되는데, 이 가운데 4억 장이 기독북한인연합이 보낸 것으로 확인된다.

2001년 설립된 비영리단체 ‘한국 순교자의 소리’는 풍선을 통해 북한에 성경을 배포하기 시작했다. 북한에서 정부의 허가 없이 문서를 배포하는 것은 사형죄로 처벌될 수 있는 행위이기 때문에, 순교자의 소리는 수소가스를 채운 풍선에 성경을 넣고 북한으로 보내고 있다. 풍선은 국경 지대에서 띄우고 있으며, 풍선에 설치된 GPS를 통하여 풍선의 경로를 확인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된다.

‘대북전단금지법(남북관계 발전에 관한 법률)’ 제정

2020년 12월 국회에서 대북전단금지법(남북관계 발전에 관한 법률)이 통과되면서,
2021년 3월부터 군사분계선 일대에서 북한을 향해 전단(삐라) 살포, 확성기 방송 진행, 게시물의 게시 등이 금지되었다. 북한 주민들이 외부세계와 정보를 나눌 길이 사라짐에 따라 국제사회와 시민사회는 우려를 보내고 있다.

‘모든 사람은 모든 매체를 통하여 국경과 상관없이 정보와 사상을 구하고 받아들이고 전파할 수 있는 자유가 있다’. 국제인권법의 이 조항은 북한 주민에게도 당연히 해당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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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북방송과 북한

“우리 사회에서 대북 방송은 일반인에게 어떻게 인식되고 있는가? 대북방송의 개념조차도, 아니 대북방송의 존재 자체도 모르는 경우가 많다.
설사 대북방송을 들어본 경험이 있더라도 대북방송하면 대부분 ‘식상함’ ‘북한 정권 비판’ ‘재미없고 지루함’ 등을 떠올리곤 한다.
(…) 북한이 심각한 경제난을 겪은 1990년대 말부터 탈북자가 급증해 현재까지 탈북자는 약 3만 5천명으로 집계되고 있다.
또한 북한 식당 여종업원들부터 북한 주영 공사 등 고위급까지 탈북하는 계층의 폭도 넓어지고 있다.
탈북 경위를 조사한 다양한 결과에서 대북 라디오 방송을 듣고 탈북을 결심하게 된 경우가 많았다.
북한은 이러한 외부 정보 유입이 체제 붕괴로 이어질 수 있다는 불안감으로 철저한 감시와 통제 아래 대북방송에 대한 방해 전파를 지속적으로 보내고 있다.“

“대북방송은 정보가 차단된 북한 주민들에게 외부 소식과 북한 내부 소식까지도 알게 하는 중요한 정보 유입 통로다”
출처 : 『대북방송』, 조수진 (커뮤니케이션북스, 2017년)

1942

미국의 소리(VOA, Voice Of America) 방송 시작

미국의 소리는 1942년 8월 한국어 방송을 시작하였다. 미국 정부 국영 국제방송인 VOA는 시작에는 미국의 대일 심리전 방송으로 역할을 하다가, 광복 이후에는 미국 정부의 정책 선전과 더불어 미국 사회 및 문화에 대해 알리는 역할을 하였다. 한국전쟁 발발 이후에는 사상심리전을 위한 방송을 주로 하였다.

VOA, 《자유의 종은 울린다》 (1942.8 시작)

자유의 종은 울린다는 VOA에서 처음으로 진행한 한국어 방송으로 미구 샌프란시스코 방송국에서부터 전파가 송출되었다. “고국에 계시는 동포 여러분, 지금부터 미국에서 보내드리는 자유의 소리 방송을 시작하겠습니다”는 유경상 박사의 멘트와 함께 이승만 전 대통령의 『2천만 동포에게 고한다』 연설이 매일 되풀이 방송되었다.

1948

KBS 대북방송 시작

[자유대한의 소리]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KBS 네트워크는 ‘자유대한의 소리’라는 이름으로 유엔군 사령부의 통제 아래 심리전 방송을 위주로 대북방송을 진행하였다. 전쟁 후에도 1950~1960년대는 냉전기로서 반공 이념이 중요시되었기 때문에 대북방송은 적대적 방송이 강조되었다.

KBS(자유대한의 소리), 《김삿갓 북한방랑기》 (1964.5~ 2001.4)

김삿갓의 북한 방랑기는 1964년 4월부터 30년 동안 매일 낮 12시 55분부터 5분간 KBS 제1,2 라디오, 대북방송으로 방송되었던 반공 라디오 드라마이다.
김삿갓의 북한 방랑기는 역사 속 풍류시인 김삿갓이 북한을 여행하면서 북한 주민들의 비참한 생활모습과 북한 공산집권의 실상을 고발하는 내용을 담았다. 한국 학생들이 ‘군관 동무’ 말투까지 흉내내는 등 드라마가 성공을 하자 북한은 1966년 이에 대응하여 ‘홍길동 남조선 방랑기’를 만들기도 했다.

(관련 부분 04:19~05:12)

1956

1956년 극동방송 개국, 대북방송 시작

극동방송은 중국과 소련, 북한 등 공산권을 향한 선교 목적으로 설립된 우리나라 최초의 대외방송이다. 극동방송은 1956년 이래 현재까지 꾸준히 북방을 향한 복음을 담은 전파를 100Kw로 송출하고 있으며 북한 주민의 청취를 확대하기 위하여 영동 극동방송(속초)과 제주 극동방송을 통해서도 북방 프로그램을 제작하고 있다.
1990년 말에는 북한에 극동방송의 주파수가 고정된 ‘라디오 보내기 운동’을 진행하며 외부정보에 대한 북한 주민들의 갈증을 해소하려는 노력이 중요사업으로 이뤄지기도 했다.

극동방송, 《복음의 메아리》 (1966~)

복음의 메아리는 북한 주민들에게 생활 정보를 제공하고, 북한 체제의 실상을 알리는 동시에 기독교 선교로 통일에 한걸음 나아가고자 하는 기획 의도로 매일 방송되고 있다. 낮보다 더 밤에 더 선명한 소리로, 더 멀리 전파가 닿는 것은 물론 북한 주민들이 몰래 방송을 들어야 한다는 보안상의 이유로 새벽 시간 방송이 진행된다. 서울과 영동에서 새벽 4~5시에 각각 진행된다. 복음이라는 제1목표와 더불어, 날씨 정보에서부터 시작하여 북한인권 그리고 북한과 관련된 대내외적 사건을 전하며 북한 주민들에게 외부 정보를 전달하고 있다.

febc 극동방송 다시듣기

(2022.01.09. / 서울극동방송 복음의 메아리)

극동방송, 《남과 북이 하나되어》 (1995~2015)

남과 북이 하나되어는 남과 북이 하나되기 위한 지향점을 찾아가는 프로그램으로, 탈북자들을 출연자로 초대하여 그들의 진솔한 이야기를 듣는 자리를 마련하였다. 북한의 현 상황을 분석하는 ‘지금 북한은’, 북방 사역자들의 현장이야기를 통해 북한 복음화를 준비하는 ‘북한현장 회복이야기’ 등의 코너가 진행되었다.

(2012.1.12. / 남과북이 하나되어)

1950’~1960’

미국의 소리, 대북방송 편성 확대

라디오가 한국 사회의 대중적 미디어 매체로 자리잡으면서 미국의 소리(VOA)는 직접 중계 및 한국 방송을 통한 중계 편성으로 대북 방송을 확대하였다. 프로그램은 주로 뉴스, 뉴스 해설과 더불어 미국의 정책과 문화를 소개하는 교육 프로그램들이 편성되었다. 이 시기 주요 프로그램으로는 《미국의 소리 중계》, 《미국의 어제와 오늘》등이 있다.
현재는 새벽(02:00-03:00/04:00-06:00)과 저녁(20:00-00:00) 시간대로 7시간 한국어 방송이 진행된다. 저녁시간대 방송은 극동방송의 주파수를 통해 방송이 전달된다.

1972

KBS ‘사회교육방송’으로 개칭

[사회교육방송] 1972~2007

1972년 남, 북한은 7.4 남북공동성명을 발표하고 남북 심리전 방송을 중지하는 선언을 하였다. KBS는 남북공동성명에 따라 ‘사회교육방송’으로 명칭을 바꾸고 대북방송을 진행하였다. 이 시기 심리전 방송 중지 선언에 따라 적대방송이 일시 중지되었는데, 곧 체제에 대한 상호 비판을 다시 진행하였다.

주요 프로그램

KBS(사회교육방송), 《노동당 간부들에게 고함》 (1980.1~2000.6)

노동당 간부들에게 고함은 대북 심리전 프로그램으로 진행자인 강인덕 전 통일부 장관의 논평, 북한 전문가들의 대담으로 꾸려진 대표적인 대북 비판 프로그램이었다. 이 방송을 듣고 탈북한 북한이탈주민이 당시 강인덕 전 통일부 장관을 찾아가 인사했다는 일화가 있을 정도로 북한 주민들에게 ‘인기 방송’이었던 것으로 알려진다.
후에 강인덕 장관이 통일부 장관이었을 때 그의 집에 ‘반통일 곡예’라는 제목의 비난 만평을 그린 삐라가 뿌려졌고, 장관직을 그만두었을 때에는 김정일이 원산 갈마초대소에서 축하연회를 했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로 북한 당국은 대북방송을 눈엣가시로 여겼다.

1973

아세아방송(현 제주극동방송) 개국

아세아 방송은 1973년 6월 제주도에서 방송을 시작하였다. 아세아방송 역시 북방을 향해 대북방송을 진행하였으며, 방송 초기 성경이 없는 북한 주민들을 위해 성경을 매일 5분씩 받아쓸 수 있는 속도로 읽어주는 ‘5분 성경’과 같은 프로그램을 편성하였다. 아세아방송은 1977년부터 극동방송과 공동 운영되다가, 2001년 10월 1일부로 ‘제주 극동방송’이란 이름으로 방송을 시작하였다.

아세아방송, 《만주 동포에게》 ~ 《안녕하세요 여기는 대한민국 제주도입니다》

재중동포를 대상으로 하는 프로그램은 ‘만주 동포에게’로 시작하여 ‘나의 살던 교향은’ ‘먼 땅 좋은 기별’ ‘사랑의 가교’ 등으로 이름을 바꾸어 지속적으로 진행하였다. 이후 1993년부터는 ‘여기는 제주도 입니다’로 바꾸어 현재까지 진행을 이어오고 있다. ‘여기는 제주도입니다’는 남한 사회와 교회의 좋은 모습을 소개하면서, 북한관련 소식과 기독교의 핵심 등을 주요 내용으로 담아 새벽 5-6시 시간대에 방송을 진행한다.

1997

자유아시아방송(RFA, Radio Free Asia), 한국어 방송 시작

자유아시아방송은 1994년 미 의회가 입법한 국제방송법에 따라 1996년 미국 의회의 출자로 설립된 국제 방송국으로, 뉴스와 정보에 자유롭게 접근하지 못하는 아시아 지역을 대상으로 방송을 진행한다. 한국어 방송은 언론의 자유가 제한된 북한 주민들을 청취대상으로 한다. 현재 하루 5시간 밤(00:00-04:00) 시간대와 오후(18:00-19:00) 시간대에 방송을 진행한다. 새벽시간대의 방송은 극동방송의 중파 AM 주파수를 통해 방송이 이뤄진다.

RFA를 듣는 사람들

자유아시아방송, 《여기는 서울》

여기는 서울은 한국에 정착한 탈북민들의 이야기와 더불어 한국 사회의 여러 풍경에 대해 전달하는 데일리 편성 프로그램으로, 현재는 평일 01:05~01:15 시간대에 방송된다.

여기는 서울 듣기

(2022.04.26. / 여기는 서울- 브라보 마이 라이프)

2006

민간 대북방송 개국

국민의 정부는 2003년 7월 북한의 ‘상호비방방송 중단’ 요구를 기점으로 교류와 협력으로 대북방송의 기조를 바꾸었고, 이에 북한에 대한 비판을 강조하고 북한 자유화를 위한 수단으로서의 대북방송의 성격은 약화된다.
이러한 흐름과 더불어 2000년대 들어 외부정보에 대한 욕구가 커진 북한 주민들의 수요에 맞춰 ‘전통적인 대북방송’의 기능을 복원하겠다는 목표로 민간 대북방송들이 등장한다.

자유북한방송 (2004~)

자유북한방송은 탈북민들을 중심으로 북한 체제 비판과 더불어 자유주의 이념을 북한 주민들에게 전달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방송으로, 2004년 4월 인터넷방송을 시작으로 2006년 2월 단파 라디오 방송을 시작하였다. 현재 밤(21:00-23:00)/새벽(04:00-06:00) 시간대에 각각 두 시간씩 방송을 진행한다.
주요 프로그램은 탈북 군인들의 인터뷰로 구성된 《인민군24시》, 인권기록보존소에서 제공하는 자료를 바탕으로 북한의 인권 문제를 고발하는 《북한인권이야기》 등이 있다.

(2022.05.05. 자유북한방송)

자유조선방송 / 열린북한방송 (2005~)

자유조선방송은 북한의 민주화와 개혁개방을 지향하는 민간 방송으로 2005년 12월 처음으로 전파를 송출하였다. 2013년 1월 기준으로 밤(21:00-23:00) / 새벽(05:00-06:00) 시간대 각각 두 시간과 한 시간씩 방송을 진행하였다. 주요 프로그램으로는 북한 내외 소식과 해설 및 분석, 논평을 전하는 《조선의 오늘과 내일》이 있다.
열린북한방송은 2005년 12월 개국한 한국 최초의 민간 대북방송으로, 개국 당시에는 자유북한방송과 자유조선방송의 프로그램 송출을 대행하는 역할을 주로 하다가 2006년부터 자체 프로그램을 송출하였다. 2010년부터는 춘천MBC의 표준 FM 채널을 임대하여 새벽(03:00-04:55) 시간대 방송 송출을 진행하였다.
열린북한방송과 자유조선방송은 북한전문 인터넷 신문 ‘데일리NK’와 통합하여 2015년 ’국민통일방송‘을 꾸렸다.

북한개혁방송 (2007.12~)

북한개혁방송은 북한 스스로의 변화와 개혁 실현을 위하여 북한 내 변화주도세력(간부, 지식인, 군관, 대학생, 청년)을 주 청취자로 하여 리더십 계발을 목표로 방송을 진행한다. 2007년 단파 라디오 방송을 시작으로 현재 밤(23:30-00:30) / 새벽(05:30-06:30) 시간대에 각각 한 시간씩 방송을 진행한다.
주요 프로그램으로는 북한 내부의 소식, 국제 정세 등을 분석하고 해설하는 《김승철의 조선정세》, 핵심 사안에 대한 논평 형식의 《지도자의 길》 등이 있다.

(2022.05.07. 북한개혁방송 1부방송)

2007

KBS ‘사회교육방송’, ‘한민족 방송’으로 개칭

남북간의 언론 교류와 협력이 강화되는 기조 아래 KBS 사회교육방송은 ‘한민족 방송’으로 명칭을 변경하면서 청취 대상을 북한 주민뿐 아니라 중국과 러시아 등에 거주하는 재외동포, 한민족을 아우르는 것으로 확대한다. 이에 따라 북한을 직접적으로 겨냥하여 노골적으로 비판하는 프로그램보다는 한반도 주변지역 동포를 대상으로 하는 정보, 문화 프로그램 제공과 더불어 평화통일을 지향하는 방송을 목표로 프로그램을 구성하고 있다. 방송은 한민족 1채널에서 13:00~21:00까지 한민족 2채널에서 19:00~13:00 방송을 진행한다.

KBS(한민족 방송), 《통일열차》 (2007~)

통일열차는 남북한 주민의 동질성 회복과 신뢰 분위기 형성을 통해 화해와 협력의 기운을 통일로 이어나가기 위한 기반 조성에 기여하는 프로그램으로, 밤 시간대(00:05~01:00)에 방송된다. 현재 북한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소식을 전달하는 ‘지금 북한에선’, 한국의 전통 문화를 전하는 ‘우리 전통 음악이야기’ 등의 코너가 있다.

통일열차

한민족 방송 프로그램 리스트

2014

민간 대북방송 통합, ‘국민통일방송’ 대북 방송

국민통일방송은 ‘자유조선방송’ ‘열린북한방송’, 북한 전문 인터넷 신문인 ‘데일리NK’가 통합해 만든 방송으로, 매일 3시간씩 단파 주파수로 방송을 송출하고 있다. 방송은 북한 내 소식과 세계 뉴스, 민주주의와 시장경제 등 북한 주민의 시민교육 프로그램 등이 제작되어 송출되고 있다. 주요 프로그램으로는 남한 소식과 북한 내 소식, 뉴스 논평을 전하는 ‘뉴스통’. 국제사회와 한국사회를 통해 북한 사회를 돌아보는 ‘북한의 내일은’ 등이 있다.

국민통일방송, 《청춘통일》

청춘통일은 대학생 리포터, 탈북 청년들이 출연해 남한에서 정착해 나가는 이야기, 젊은이들 사이에 유행하는 다양한 정보들을 제공하는 프로그램으로 ‘남과 북의 청년들을 잇는다’는 취지로 방송이 진행된다.

(2021.05.31. / 청춘통일 다시듣기)

2017

BBC 한국어 방송 개시

영국의 공영방송 BBC는 2017년 9월 북한 주민을 청취 대상으로 하여 한국어 방송을 시작하였다. BBC 코리아는 북한에 바깥 세상의 소식을 공정하고 정확하게 알리겠다는 취지로 방송을 시작하였으며, 방송은 단파로는 00:00-03:00까지, 중파로는 01:00-02:00 시간대에 진행된다. 주요 프로그램은 영어 학습코너인 ‘English Learning with BBC’와 뉴스 프로그램인 ‘BBC 코리아 라디오’가 있다.

《English Learning with BBC》
(2022.05.04. English Learning with BBC 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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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식저장장치와 북한

장마당을 통하여 다양한 미디어가 유입되면서
북한 주민들은 삐라와 대북방송이 아닌 새로운 미디어를 통해 외부정보를 접할 수 있게 되었다.
TV, CD, DVD, 노트텔, SD카드 등의 새로운 장치들을 통하여 다양한 외부 컨텐츠를 접하고,
외부 정보에 대한 욕구가 더욱 증가되는 흐름도 나타나고 있다.

1942

1990년대 후반~ 교류를 통한 장치 유입

1990년대 후반 ~

‘고난의 행군’으로 인해 북한 주민들은 생존을 위해 스스로 식량을 구해야 했다. 국경지역 사람들이 중국을 오가며 거래를 하면서, 남한 드라마나 영상 등의 영상매체가 함께 유입되었고 시장을 통해 암암리에 전파되기 시작하였다

VHS / EVD(노트텔) 의 유통

영상매체가 유통되면서 북한에서 ‘밴또’라 불리는 VHS(가정용 비디오테이프 레코더)와 CD, DVD, USB가 모두 재생되는 저가의 중국산 EVD 플레이어(노트텔)가 유통되기 시작한다.

 

2000~ 시민사회에 의한 장치 유입

2000년 6.15 정상회담으로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상호비방 중단’에 합의하면서, 탈북자 주도의 시민단체들이 북한에 정보 유입 운동을 주도적으로 진행한다.

2008

북한전략센터

2007년 설립된 북한전략센터는 북한의 민주화를 위하여 2008년 극동방송에서 전달 받은 5천 개의 소형 라디오와 DVD, CD를 북한 지역으로 보내는 것으로 정보 유입 운동을 시작하였다. 북한전략센터는 매년 1만 개 이상의 저장장치를 북한으로 보내고 있다.

2009

노체인

북한의 민주화를 위해 ‘노체인’은 2009년을 CD에 각종 콘텐츠를 담아 북한에 보내는 운동을 시작하였다. 2012년부터는 USB, 2015년부터는 초소형 저장매체인 SD카드를 보냈다.

노체인은 2015년부터 드론을 통해 북한에 이동저장매체들을 보내고 있다. 드론은 USB는 약 200개, SD카드는 약 1천개를 한번에 각각 운반할 수 있는 것으로 확인된다

2016

큰샘&노체인

탈북민으로 구성된 두 북한인권 민간단체는 2016년부터 ‘쌀도 먹고 정보도 먹이자’라는 목표로 페트병에 쌀을 담아 USB를 북한으로 보내는 운동을 시작하였다. USB에 담기는 내용은 교양, 오락 뉴스 프로그램 전반을 아우르지만 궁극적으로는 북한 주민 스스로가 자유민주주의 사회를 보고 깨닫도록 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2016

미 인권재단(Human Right Founation)

국제인권단체 ‘인권재단’은 2016년부터 ‘자유를 위한 플래시드라이브 캠페인’을 진행하여, 전 세계에서 기부받은 USB에 한국 가요와 드라마, 현재 한국의 모습 등을 담아 북한에 보내고 있다.
2020년 4월 기준 90만 개의 USB가 북한에 들어갔고, 북한 주민 약 100만 명에게 정보가 전달된 것으로 추정된다. ‘자유를 위한 플래시드라이브 캠페인’은 북한 주민들의 자유 증진을 위해 진행된다.

2019

‘한국 순교자의 소리’

풍선을 통하여 북한에 성경 등 기독교 자료를 보내온 ‘순교자의 소리’는 2019년 대형 수소풍선을 통해 성경과 더불어 오디오 성경, 찬양 등이 담긴 US USB 드라이브/SD 카드 5,000개를 북한에 보낸 것으로 확인된다.

2020

‘대북전단금지법(남북관계 발전에 관한 법률)’ 제정

2020년 12월 국회에서 대북전단금지법(남북관계 발전에 관한 법률)이 통과되면서,
2021년 3월부터 군사분계선 일대에서 북한을 향해 전단(삐라) 살포, 확성기 방송 진행, 게시물의 게시 등이 금지되었다. 북한 주민들이 외부세계와 정보를 나눌 길이 사라짐에 따라 국제사회와 시민사회는 우려를 보내고 있다.

‘모든 사람은 모든 매체를 통하여 국경과 상관없이 정보와 사상을 구하고 받아들이고 전파할 수 있는 자유가 있다’. 국제인권법의 이 조항은 북한 주민에게도 당연히 해당된다.